성공수기

[최우수상] 제 2의 전성기

울산시청앞점
울산시청앞점

요즘 한솥 가맹점주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어려워진 사업환경에 대한 우려를 합니다. 배달전문 도시락의 등장으로 단체 주문이 급감하고 밥버거의 등장으로 우리의 주고객층인 학생들이 급격히 빠져 나가는 어려움과 지속되는 불황으로 인한 매출 감소로 전년도에 비해 장사여건이 많이 어려워 졌다고 합니다. 그럴때마다 저 자신은 한솥의 부정적인 측면만 볼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을 볼 것을 강조해서 말씀 드립니다. 

울산에 한솥도시락이 진출한지 15년동안 본부의 꾸준한 신제품 개발과 여러가지 지원이 꾸준한 매출증대로 이어져 큰 어려움없이 그 동안 사업을 해온 긍정적인 측면을 얘기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인기를 끌다가 1,2년 후에는 흔적도 없이 없어지는 우리 주위의 상권을 바라 볼 때 15년 동안 꾸준히 매출을 유지 할 수 있는 사업이 그리 흔하냐고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산것만해도 감사해야 한다는 본인의 생각을 말씀드리곤 합니다.

그 동안 본부에서는 치킨마요 출시로 매출 증대에 큰 기여를 했으며 새롭게 가게를 리모델링하여 소비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장님의 경영마인드와 가맹점과 공존하겠다는 경영 철학에 따라 요즘 인기를 끄는 빵집이나 커피점, 편의점등에 비해 투자대비 이익율이 높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시련이 있게 마련이고 시련을 기회로 살아 잘 극복해 나간다면 우리 한솥은 지나 온 20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영원히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솥을 만나기 전의 나


저의 나이는 올해 63세로 6.25전쟁으로 인해 우리나라를 피로 물들이던 1951년 경상북도 김천 인근 조그마한 면소재지에서 3남 2녀의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요즘 같으면 아예 태어나지도 못했을 순번인데 그때는 다산을 할때라 넷째이지만 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이발관을 하셔서 어렵지만 그런대로 살아가던 중 초등학교 3학년때 아버지께서 급사하셔서 우리 식구들은 외갓집이 있는 부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는 곧 잘하여 수재들만 가는 부산중학에 입학하였고 고등학교는 집안이 어려운지라 부산상고 (노무현대통령 출신학교:노대통령은 53회 저는 57회 졸업생)에 진학하였습니다. 졸업후 졸업생들이 주로가는 은행이나 금융기관을 가지 않고 장사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 길만이 무너진 가세를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무일푼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약관 29세의 나이에 삼성계열사인 제일모직 울산대리점을 창업하게 되었고 30세의 나이에 전용 운전기사가 딸린 자가용 승용차까지 소유하게 되었습니다.(지금은 울산에 자가용 승용차가 40만대에 육박하지만 그 당시는 3,000여대에 불과함) 

사업은 계속 잘되어 83년 제일모직 창업 30주년 기념식때 우수점포로 선정되어 금 10돈을 부상으로 받기까지 했습니다. 90년도에는 그 당시 울산에서 제일 좋은 56평 아파트에 입주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사 호사다마라고 건강하던 우리 집사람이 87년, 95년 두번이나 심장 수술을 받아 그 휴유증으로 오랫동안 병치레를 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과학자를 꿈꾸던 우리 아들이 의과대학(현 서울성모병원 심장내과 전문의)으로 진학하게 된 것도 집 사람의 오랜 병마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가 97년 IMF 구제금융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고 영국에서 모직물을 수입하여 전국적으로 판매하던 사업도 환율 폭등으로 인하여 손을 놓아야만 했습니다. 98년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남은 5억원 정도의 자산 중 현금 2억 5천 정도는 새롭게 시작한 건설업의 동업자 배신으로 인해 날려 버렸고, 외상과 재고로 남은 2억 5천 정도는 같이 일하던 형의 생계를 위해 양도하고 나니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한솥을 만나고 난 후의 나


99년 2월 낙담하여 집에서 두문불출하던 내가 대학수능시험에서 0.2%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둔 아들이 평소 가고 싶어하던 가톨릭의과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입학식 때 저는 가기 싫었지만 학교측에서 장학생 부모는 꼭 참석해야 된다고 하여 부득이 서울을 가게 되었습니다. 입학식을 마친 후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딸아이의 안내로 지하철 강변역 부근의 대형 쇼핑센터를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서 식사를 하기로 하여 식당가를 갔다가 한솥 도시락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내가 식구들에게 도시락을 먹어 볼 것을 권했으나 식구들이 모두 반대하는 바람에 나 혼자만 따로 떨어져 그 당시 도련님 스페셜도시락을 구매하여 시식하게 되었고 우수한 맛과 저렴한 가격에 매료되어 당일날 울산에 내려가려고 했으나 하루 지체하여 다음날 한솥 본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사업 설명을 하시던 당시 김종식 전무님이 부산중학교 한해 선배라 더욱 친근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업자금이나 영업장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 바로 계약을 하고 부부가 같이 3주 교육부터 이수했습니다.
교육이수는 3월에 했으나 점포와 사업자금을 마련하느라 두 달 준비기간을 거친 후 입지가 좋지 않은 장소에서 99년 5월 19일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상했던대로 매출은 시원찮아 일 30만 조금 넘게 매출에 월 1,200만원을 팔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TV자막 광고로 월 100만원 개업 첫해에만 68,000장의 전단지를 배포하여 매출은 바닥이 었으나 전단지 배포 실적은 전국 톱을 기록하는 등 광고비를 꾸준히 지출했습니다.

저 자신이 사업경험으로 보기에 한솥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침 7시에 개점하여 저녁 9시까지 영업하기로 하고 오전조 8시간씩 2명, 오후조 8시간씩 2명을 고용하여 고정지출비, 인건비, 광고비를 지출하다보니 우리 수중에는 별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부득이 여사님들이 다 퇴근하고 난 후에 집사람과 밤 2시까지 영업을 하는 강행군을 계속했습니다. 1년쯤 열심히 노력하다보니 점점 알려지게 되었고 단체 주문도 심심찮게 수주하게 되어 경영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제가 앞치마를 직접 입고 일을 하다보니 과거에 친했던 분들이 찾아와 동물원에 동물 보듯이 잘나가던 문사장이 어찌 이렇게 되었냐고 동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사업에 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삼성그룹의 대리점을 할 때보다 사업의 규모는 작았지만 한솥의 기업이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기업이념대로 지역 사회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열심을 다하다 보니 점점 주위에서 인정받게 되어 2002년 2호점, 2003년 3호점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경영 철학


1. 1호점과 2호점간에 도보 5분거리, 2호점과 3호점 사이도 도보 5분거리에 점포를 개설했습니다. 대 부분의 사업자들이 다 점포를 할 경우 지역 간격을 넓히는 경향이 있으나 저는 제 주위라도 확실히 한솥을 알려야 겠다는 소신에 우선의 이익을 계산치 않고 경영의 효율성과 장기적인 안목을 보고 가까운 거리에 다 점포를 두게 된 것입니다. 식자재를 공유하거나 한 점포가 바쁠 경우 이동하기가 편해 좋은 점도 많았습니다.

2. 점포 청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점포 청소만은 제가 직접 했습니다. 만약 우리 점포가 불결하여 전체 한솥이미지가 나빠질까봐 청소만은 최선을 다해서 가게 청결을 유지했습니다.

3. 여사님들이 긍지를 가지고 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습니다. 직접 고객을 대하시는 분은 여사님이 십니다. 여사님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고객을 대하는 것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영화로 치면 여사님들은 주연배우이고 저는 감독에 지나지 않음을 항상 다짐하고 복지문제와 인격적인 대우 시급문제도 항상 앞장서서 배려했습니다. 명절 때도 최대한 많은 떡값을 지불했습니다. 
다들 저보고 인복이 있다고 하는데 진심을 가지고 여사님들을 대하다 보면 전체 다는 아니지만 주인인 나보다 더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여사님들도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4. 사업의 성패는 경영자의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상황을 보는 안목의 차이가 문제입니다. 본부에서 새 모델을 개발하여 인테리어를 새롭게 한다고 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오랫동안 불입하던 보험을 중도 해약하여 일억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리모델링을 하였습니다. 울산에 있는 점포들은 거의 뉴모델입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매출이 40%~80% 이상 신장했습니다.

5. 우리 지역에 있는 한솥 가맹점들은 사업의 경쟁자가 아니라 사업파트너 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울산만해도 17개의 가맹점이 있습니다만 서로 정보 교환도 하고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좋은 부동산 정보가 있어 주상복합 아파트를 같이 매입하여 네분이 같이 입주하기도 했습니다.

6. 특별히 본부에서 성공사례 공모함을 계기로 전국 우수점포들의 경영마인드를 배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번 우수점포 시상식 때 몇가지 점을 건의 했을 때 사장님께서 즉석에서 건의 사항을 100% 들어 주시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하는 모습을 보고 사장님의 경영마인드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등산을 할 때에도 오르막, 내리막 길을 반복하여 어느덧 정상에 도달하듯 힘들 때 다시 한번 우리를 돌이켜 보는 기회로 삼고 스스로 개선해야 될 것을 찾아서 고쳐 나간다면 우리 한솥은 영원히 잘될 것입니다.
지난번 우수점포 시상식 때 창립 40주년때 다시 한번 우수점포 시상을 받고 싶다(그때 내 내이 83세)고 하니까 사장님께서 100살까지 이 사업을 같이 하자는 말씀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한솥과 15년을 같이 하면서 느꼈던 점과 제 인생이야기를 말씀 드렸습니다.

저보다 훌륭한 분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제 자랑이나 별 영양가 없는 얘기가 되지 않았는지 널리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한솥과 한솥 가맹점주들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같이 노력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울산공업탑, 시청점 문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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