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수상작

[최우수상] 따뜻한 인생

화명신시가지점
화명신시가지점

“사장님 이야기 좀 하입시더”

2006년 겨울로 기억한다. 제법 추운 어느 날.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러 근처 도시락 가게를 들른 나는 문득 그 집 사장님의 이 한마디가 내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을 줄 꿈에도 몰랐다. 대기업 5년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껴 한국탈출, 중국생활 1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뭐라도 시작했어야 했다. 

‘이 참에 장사를 배워야겠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나는 이렇게 결심하고 편의점 창업에 나섰다. 큰 돈은 안되어도 안정되고, 장사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의점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근처에 경쟁점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오기 전까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막상 그 경쟁이 내 밥그릇을 뺏어가기 시작하니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랴? 좀 더 친절하고 좀 더 청결하고 좀 더 구색 갖추고, 본사에서 강조하는 갖가지 노력도 해보았지만 떨어진 매출은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그 때부터 편의점에 조금씩 흥미를 잃었나 보다.

글쎄 ..뭔가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사와 가맹점주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노력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구나 이 장사는 ..이런 느낌으로 의욕없이 점포를 운영하던 중이었다. 

또 그런 탓인지 건강도 별로 안좋아져서 지병이던 허리디스크 수술도 받게 되었다. 재활치료 후 우연히 들린 같은 건물 한솥도시락 사장님이 갑자기 이야기 좀 하자며 던진 한마디였다.


“와예?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혹시 이 가게 하실분 소개좀 해주이소”

“아니 잘 되는 가게를 와예?‘

“사실은 제가 하는 일이 쪼매 따로 있슴니더. 인터넷 교육사업인데예 ..사실은 제가 부끄럽지만 대표이고예..직원도 쫌 있고 한데 요즘 갑자기 바빠져서예. 도저히 이거하고 같이 못하겠네예. 직원들 보기도 미안하고. 또 어머니가 낼 모레 팔순인데, 가게오는거 그만두라케도 저리 고집을 피운다 아닙니꺼? 내가 그만두기 전까진 도저히 안될꺼같네예 ..”


한솥 사장님과는 평소에 친분이 있었다. 
편의점 하면서 직원들 밥도 한번씩 사먹었고, 평소 안부묻고 장사 어떤지 물어보고 아주 가깝진 않아도 그래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런대로 잘 되는 가게를 넘기긴 아까울 텐데 싶어 조금의 의구심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 사장님 솔직히 이야기 해도 됩니꺼?”

“ 말씀해보이소 ”

“ 제가 좀 관심이 있는데예 ..진짜 와 넘길라 그람니꺼? ”

“ 진짜 그 이유 밖에 없다카이 그라네..내 일이 바쁘다카이..”

“그래예? ..그라믄 제한테 시간좀 주이소”

그때부터 발품을 팔고 알아보기 시작했다. 도시락 사업이 어떤것인지, 전망은 좋은지,
화명신시가지점 매출과 수익구조는 어떤지, 경쟁점은 어딘지 등등..

결론은 와우 !!! 이거 함 해볼만 하다 싶었다

가장 크게 와 닿아았던건 

‘내가 한 번 어떻게 해볼 여지가 있다는 점’ 이었다

편의점을 4년째 운영해오던 나로서는 떨어지는 매출에 어떻게 해볼수가 없었다.

업종 특성상 전단지를 할수도 없고, 손님한테 가까운 다른 편의점 두고 일부러 멀리 오라고 할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도시락 가게는 맛있고 친절하고 입소문만 잘나면, 멀리서도 얼마든지 올수 있으며, 또 나름대로 홍보활동으로 단골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장님은 나름 나를 걱정해서인지, 본사 교육부터 함 받아보고 결정하라는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내 마음속은 이미 할거라고 결정해 놓았지만, 그래도 교육받아보고 완전히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2007년 1월부터 3주 본사교육을 받았다.

한솥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대기업 교육과는 판이하게 다른, 왠지 정감이 있으면서도 체계도 잘 잡힌, 그리고 한마디로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교육은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정신교육 ..다시말해 장사하는 사람이 갖추어야할 소양이나 마음가짐에 대해 많이 일깨워 주었다. 지금도 내 책상앞에 써 놓은 글귀들은 그 당시 교육시간에 들었던 내용들이다

心先益後 - (고객이나 종업원을 향한) 마음이 우선이고, 이익은 뒤에 생각하라 
마음을 쓰면 이익은 절로 따라온다

성공방정식 = 능력 × 열의 × 사고방식( -100 ~ + 100) 

특히 감명깊었던건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의 인생의 성공방정식 이었다
「능력은 타고난 경우가 많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것이며
열의는 자신의 의지로 바꿀수 있는 것이다.능력은 부족하지만 열의가 강하다면 자신의 선천적 한계를 뛰어넘을수 있다.
사고방식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나모리 회장은 이 세 요소 가운데 사고방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훌륭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인생을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으로 살겠다는 플러스사고를 가진다면,다소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훌륭한 인생의 열매를 얻을수 있다.」

나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성공방정식을 꼭 명심하고 적용하리라 마음먹었다.
그 해 3월에 가게를 인수하게 되었고, 드디어 내 인생의 도시락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종업원은 대부분 그대로 인수 받았고 , 나름 나도 본사 교육을 받고 왔지만 주방일도 익숙치 않았고, 종업원들도 새 주인에 대해 낯설었을 것이다.

그 당시 화명신시가지점 매출은 아주 높지도 아주 낮지도 않은 중간수준이었는데, 나는 매출을 끌어올릴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았다. 그 동안 홍보활동도 충분치 않았으며,손님들한테는 더 친절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배운대로 적용해가며, 서서히 매출을 끌어올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3월달 매출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실망할 틈이 없었다. 틈만 나면 전단지 돌리고, 오는 손님 접객 잘하고, 신문전단도 그 전의 몇배로 넣었다. 4월 되니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단체주문도 조금씩 늘었고,단골도 좀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출도 꾸준히 향상되어,나름 동네에서 ‘장사 잘되는 집’으로 소문도 났다. 주위에 배아픈 사람도 꽤 있었으리라. 역시 ‘하면 되는구나’ .. ‘인생방정식은 옳구나’ ..하고 
그때 다시 한번 느꼈으며,소중한 인생방정식을 알려준 회사측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장사가 잘 되기만 한건 아니었다. 위기도 여러차례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면 우리가 실수 했을 때였다.
방송통신대에 도시락 납품을 했는데, 도시락에 직원 머리핀이 들어간채로 납품된 적이 있었다. 하필 깐깐하기로 소문난 교육청 직원의 도시락에서 발견되어서, 방송통신 대 담당자가 이건으로 크게 곤란한 적이 있었다.나는 크게 상심했다. 나 때문에 , 우리 직원의 부주의로 담당자가 곤란을 겪게 하다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민 끝에 직접 편지를 썼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도시락 대금 백만원 포기해도 좋다고..아무튼 죄송하고 다음거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있다면 다음부터는 더욱더 신경쓰겠다고 ..더 세심한 주위를 기울이겠다고 성심껏 썼다.그랬더니 담당자도 감사해하며 ..앞으로 더 잘해보자고 웃으며 기꺼이 결제해 주었다. 다행이었고 약간의 보람도 느꼈고 ..역시 진심은 통한다는 평범한 진리도 깨달았다.


나름 보람되며 크게 느낀일이라면 에어부산 승무원 도시락 납품 건이다.
에어부산이 사업을 시작하고 승무원 도시락을 항공기에 납품해야 되는데,
김해공항 근처 도시락업체가 없고, 또 있다해도 처음이라 개수도 적었으며 , 비행장까지 하루 세 번 배달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한테도 문의가 왔길래, 회사에서 미팅후 딱 한마디 했다. 

‘ 제가 좀 손해보겠습니다 ’ 

물론 에어부산의 장래성을 보고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지만,처음에는 약간 모험이었다.
처음에는 사실 수익도 별로 안나고,매일 새벽 5시에 나와야 하는 힘든 일이었지만 주인이 좀 힘들어야 점포도 클수 있고 , 또 좀 손해보면 어떠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중에 에어부산이 항로도 다양해지고,납품개수도 늘어서 점포수익에 크게 한몫한건 다행한 일이었다. 2년정도 거래후 여러 사정으로 거래는 끊어졌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거래 끊어지고 한참 후에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에어부산 담당자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때 좀 손해보시겠다고 한 그말이 참 좋았고 고마웠습니다’ 

그 후에 누가 내 좌우명을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좀 손해보자 ’입니다 라고 .. 

내가 한솥도시락을 시작한지도 돌이켜보니 벌써 7년이나 지났다. 점포는 두 개가 됐고, 그 사이 결혼도 했고, 예쁜 아이가 벌써 네 살이다.

마틴 셀리그만은 이야기했다. ‘삶의 위대한 세 영역’은 사랑,일,놀이 라고.. 
사람들은 이 셋으로 삶을 채우며,여기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일을 이야기 하자면 나는 그냥 한솥도시락이다

물론 중간에 다른 일을 추가로 더 할수도 있겠지만 ,내 의지대로 할수 있다면, 나는 한솥도시락을 계속 운영할 생각이다. 나와 내 가족에게 경제적인 안정을 주며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고,또 따뜻한 도시락으로 지역사회에 봉사할수도 있는 도시락사업을 그만둘 아무 이유가 없다.

‘사장님 이야기 좀 하입시더 ’

이 말을 못들었다면 이런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을까?

그러고보니 이전 사장님한테 무척이나 감사하고, 한솥도시락에도 감사하고, 고객들, 직원들,가족들 모두다 감사하다. 세상에는 감사할 대상이 너무나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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